가야의 전설 따라 걷는 지리산 추성 돌래길 1편

Posted on 2012. 5. 28. 01:26
Filed Under 트레킹 코스/추성 돌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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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 돌래길은 지리산 자락인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추성마을이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계곡들을 넘나드는 옛길 트래킹 코스입니다. 많지 않은 추성 돌래길에 대한 블로그 포스트들은 이 숲길 명칭을 혼란스럽게 사용하는데요. 그 예로 추성 돌레길, 추성 둘레길 등으로 말이죠. 추성 돌래길의 '돌래'는 추성마을 주민들이 지었습니다. 처음엔 돌래? 안돌래? 길이었습니다. 글수가 너무 길다고 생각되어서 돌래길이 된 것입니다.

추성 돌래길은 옛길을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특히 이 돌래길의 곳곳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전설이 깃들어 있고, 지명에는 역사와 민초들의 삶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만약 이 옛이야기를 알지 못하고 추성 돌래길을 거닌다면 많이 아쉬우리라 봅니다. 이 글(1편)에선 그 옛이야기들을 풀어 보고자 합니다.

추성마을

지리산 자락의 추성마을은 크게 어름골, 국골, 칠선계곡이 있습니다. 그 중 칠선계곡은 한국의 3대 계곡이며, 천왕봉에서 7개의 폭포와 33개의 소를 간직한 채 추성마을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노선의 대부분이 비법정 탐방로가 장기간 유지되면서 지리산의 마지막 남은 원시림으로 통하기도 합니다.

[사진1]함양군 내지리 등산로

위의 스크린샷은 함양군 방면 지리산 등산로입니다. 구글어스를 3D로 캡쳐 했습니다. 빨간색/녹색 안경을 착용하시면 3D로 보입니다.

이러한 추성마을의 유래는 세월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1500년전인 금관가야 부터 시작됩니다. 신라군에게 쫒긴 금관가야의 마지막왕인 구형왕은 지리산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백성들을 데려와 '성안'이라는 험준한 산세에 '추성 산성'을 쌓습니다. 그 대부분은 자연을 이용한 천연의 성이 되고 일부분 성벽을 쌓게 됩니다.

[사진2]빨간선은 천연의 성과 성터를 추정한 것입니다.

성안의 입구는 '석문'으로서 현재는 암석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바위가 있는데 그곳이 신라군의 침입에 대한 망을 보던 '망바위'(사진3)입니다. 망바위에는 석문을 지나 침입을 시도하는 신라군들을 공격하기 위한 둥근 모양의 '투석'(사진4)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추성마을'의 지명은 유래됩니다.

[사진3]망바위 조망 [사진4]투석

칠선계곡을 가기 위해 지나치는 마을이 '두지터'이며 쌀 창고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광점동을 지나 나오는 곳이 '어름터'인데 얼음 창고 였습니다. 이 지명들의 유래 역시 구형왕이 신라군과 대치할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또한 '성안'의 서쪽 계곡은 나라 국을 사용해 '국골'로 불리웁니다.

1500년 전 신라군과의 대치

망바위(사진3)에 올라서면 신라의 대군이 진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통로인 의평,금계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며 멀리 오도재를 넘어오는 길목이 확연하게 들어옵니다. 최적의 망루인 셈입니다. 망바위에서 동쪽으로 5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용바위'가 있습니다. 구형왕은 이곳 용바위에 올라 마천고을의 '촉동 마을'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진5]용바위에서 촉동마을 조망

[사진5]의 빨간색 원이 삼봉산 아래 촉동마을이며, 구형왕은 바로 저곳이 대궐터라며 촉동 마을에 궁궐을 지으라고 명령합니다. 구형왕의 대궐터는 '빈대궐터'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으며 현재 그 자리에 등구사라는 절이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빈대궐터(720m)와 용바위(774m)의 해발 고도는 비슷합니다.

구형왕은 궁궐 공사를 하던 중 신라군의 침공을 받아 후퇴를 거듭하며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도달해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구형왕의 돌무덤이 남아 있습니다.

구전과 정설의 역사

위의 구형왕 전설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에 전해 내려오는 '구전'입니다. 신라에게 금관가야를 순순히 갖다 받힌 김유신의 증조부 구형왕에 대한 정설의 역사와는 사뭇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설과 다른 전해내려 오는 구전일지라도 전해내려 오는 옛사람들의 이야기에 심취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리산 자락에 내려오는 수많은 전설들은 시대를 살아갔던 마을 사람들의 애환이 담겨져 있을 수 있고 삶에 여유를 찾기 위한 이야기거리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도 있구요.

1500년 전 국가를 신라로 넘기면서 대대손손 부귀영화를 누렸던 금관가야의 10대 왕이자 마지막 왕 구형왕의 실제 역사 보다 국가와 백성을 위해 끝까지 저항하다 장렬히 전사해가는 그런 왕을 백성들은 원했을 겁니다. 백성들의 그런 염원이 구전과 지명을 통해 현재까지 내려 오고 있는 건 아닐까요?

추성마을의 역사에 대한 학계의 연구는 없었으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연구(?)에 의하면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격전장이었을 마천고을에서 추성과 성안은 신라군의 보급기지 및 말을 훈련 시키는 장소였다고 합니다. 특히 성안의 말달린 평전이라는 지명과 더불어 마천의 마을이름이 내마, 외마, 도마 등과 같이 말과 관련된 지명이 있고 옛 문헌에도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데서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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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선 11.3 Km의 원점회귀 전체코스와 총연장 13.452 Km의 '추성 돌래길'을 1,2,3 코스로 나누어 미리 여행 해 보겠습니다. 아래의 안내도(추성마을에서 사용하는)에 기입 된 구간 별 Km는 구간의 중복으로 인해 실제 총 연장거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 계산한다면 총 연장이 16.1 Km가 되나 중복을 제외 하면 13.452 Km가 됩니다. GPS를 사용하시는 분들을 위해 GPS 데이터도 첨부하겠습니다.

 

<안내도는 삭제하였습니다. 2편에서 공개 예정>

 

GPS 트랙 및 포인트 원본

※ 구전의 구성은 추성마을 주민의 의견 및 지리산 전설을 참고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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